강화되는 세계 환경기준에 발맞춰, 국내에서도 현실 가능한 대책에 기반한 민관협력이 절실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녹색금융을 위한 중앙은행‧감독기구 글로벌 협의체(NGFS)’는 최근 2021년 조사에서 기온 상승 및 강수량 변화 등 기후 충격에 따른 세계 국내총생산(GDP) 감소폭이 2100년에는 최대 12.2%에 달할 것으로 분석했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도 앞서 2010년, 기후변화로 인한 농작물 공급 감소 등으로 농산물 가격이 2050년에 54~101%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추정한 바 있다.
국제결제은행(BIS) 역시 기후변화가 실물경제와 금융 부문 모두에 부정적 충격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2020년 발표했다.
다양한 부문을 담당하는 세계기구의 이러한 발표는 현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주체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워줬다.
이에 세계 각국은 지금까지 크게 두 가지 방식의 기후변화 대응 정책을 추진해왔다. 첫째는 온실가스 저감과 같은 `기후변화 완화` 정책이며, 둘째는 녹색경제로의 전환과 같은 `기후변화 적응` 정책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정책의 실효성은 얼마나 될까?
여러 국제기구 및 중앙은행이 기후변화 대응 정책의 유효성과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이러한 정책의 시행이 체제 전환을 위한 비용 증가 등 이행 리스크를 키워 세계 경제에 중단기적으로 부담을 지울 수 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기후변화 완화를 통해 얻는 편익이 비용을 웃돎으로써 긍정적인 영향이 훨씬 클 것으로 판단됐다.
가령, 프랑스 중앙은행은 2021년 조사에서 현 상태 유지 시 기후변화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2100년 기준 전 세계 GDP의 12%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반면 기후변화 대응이 성공할 경우 부정적 영향은 대폭 축소될 것으로 예측했다.
하지만 국내를 대상으로 한 연구의 경우, 온실가스 감축 과정에서 GDP는 감소하고 물가는 상승할 것이라는 분석 결과가 지배적이었다. 즉, 세계적인 편익은 커지더라도 국내 경제에는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해 우리나라가 그 과실을 함께 누리지는 못할 것이라는 말이다.
이는 현재 우리나라 산업구조가 탄소 배출 산업에 지나치게 집약돼 있기 때문이라는 판단이다.
한국에너지공단이 실시한 `2020 산업부문 에너지사용 및 온실가스 배출량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2019년 기준 제1차 금속산업, 정유, 화학산업, 비금속 광물 제품 제조업, 전자장비 제조업 등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 산업이 우리나라 전체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매우 크다는 사실이다.
본지가 국내 산업통계 분석시스템(ISTANS)에 기반해 추정한 결과, 2019년 사업체 수 기준, 전체 제조업에서 조립금속, 철강, 비철금속, 주조 등이 차지하는 비중은 16%를 웃돌았으며, 플라스틱, 고무, 석유정제, 석유화학, 정밀화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14%에 달했다. 전기기기 및 각종 전자장비 분야 역시 11%가 넘었으며, 시멘트, 유리, 세라믹 등 비금속 광물 제품 제조업도 4%를 차지했다. 전체 제조업 중 절반에 가까운 업종이 온실가스 다배출 업종군에 속하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일찍이 2017년,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으로 우리나라 GDP가 2025년 기준 0.19~0.27%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기획재정부와 환경부 역시 2019년, 탄소배출권 거래제 도입으로 향후 10년간 우리나라 GDP가 연평균 0.028~0.082% 감소하고, 소비자물가는 0.011~0.014% 상승할 것으로 추정했다.
한편, 파리기후협약 하에 각국이 진행하고 있는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s, NDC)는 온실가스 감축 수준과 방법을 당사국의 임의적인 선택에 맡기고 있다. 국가별 온실가스 감축 목표 및 정책 수준이 상이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에 국가 간 기후변화 정책 수준의 차이가 ‘탄소누출’을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탄소누출이란, 온실가스 배출 관련 규제가 강한 국가의 배출량 감소가, 관련 규제가 없거나 약한 국가의 배출량 증가를 초래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례로 새로운 탄소 배출 규제가 시행됨에 따라 경쟁력 감소, 생산비용 증가 등을 우려한 석탄발전 기업이 배출 관련 규제가 약한 국가로 이전함으로써 해당 국가의 탄소 배출량이 증가하는 것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탄소누출을 방지하는 방안으로 가장 대표적인 것이 탄소국경조정제(탄소국경세)이다. 탄소국경세란, 자국보다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에서 생산 및 수입되는 제품에 대해서는 관세를 부과하고, 국내 상품 수출 시에는 탄소 감축 비용만큼을 환급해주는 조치이다.
유럽연합(EU)은 2021년 7월 14일 기후변화 해결을 위한 입법안 패키지 ‘Fit for 55’를 발표하면서 탄소국경세도 포함시켰다.
EU는 현재 탄소 배출량 감축을 위해 역내 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이번에 발표된 탄소국경세는 동일한 탄소 배출에도 불구하고 탄소세 비용을 부담하지 않았던 해외 기업들에게 앞으로는 해당 비용을 청구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EU 역내의 수입기업이 수입품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 만큼의 탄소배출권(CBAM certificate)을 구매하되, 수입 제품 원산지 국가에서 이미 탄소배출권 거래제 또는 탄소세를 통해 탄소 배출 비용을 부담했다면 해당 비용만큼 감면이 가능한 방식이다.
이를 통해 고탄소 배출 산업이 저규제 국가로 이전하는 탄소누출을 방지하는 동시에, 역내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하겠다는 취지이다.
탄소국경세는 2026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며, 1차로 대상이 되는 품목은 철강‧시멘트‧알루미늄‧비료‧전기 제품 등 탄소 배출 위험이 큰 품목이다.
이에 해당 품목의 주 수출처인 터키, 우크라이나, 이집트, 러시아, 중국에 소재한 기업들이 큰 타격을 받으리라는 전망이다. EU는 향후 탄소국경세 적용 대상 품목을 확대해 갈 방침이다.
Larch와 Wanner는 일찍이 2017년 발표한 논문 ‘탄소관세 : 무역, 복지 및 배출 효과 분석’에서, 탄소국경세가 탄소 배출 산업이 집중돼있는 신흥국 및 개발도상국의 무역 감소와 경제적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탄소국경세가 도입되면, 주력 수출산업의 탄소 집약도가 높은 우리나라의 수출에 큰 충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울러 유럽에 직접 수출하는 품목에 대해서뿐 아니라, 중국 기업의 EU행 수출이 타격받음에 따라 중국에 중간재를 수출하는 우리나라 기업에도 2차 타격이 올 것이라는 분석이다.
우리나라의 친환경 관련 수출 비중은 현재 매우 낮은 수준이다. 2020년 기준 친환경차, 이차전지, 태양광 등 친환경 관련 수출은 전체 수출의 3.4%에 불과하다.
국내 기업으로서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격이다. 이에 국내 기업 중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포스코를 필두로 SK그룹, LG화학, GS칼텍스, 현대차 등 정유, 화학, 철강, 시멘트, 자동차 등 주요 고탄소 배출 업종 대기업들은 탄소중립 계획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려는 모양새다. 이들은 현재 대기오염물질 감축, 수소 생산,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등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국내 중소‧중견기업에게 탄소중립으로의 이행은 아직 요원한 이야기일 뿐이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온실가스 배출 거래제에 참여하고 있는 40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2.7%가 현실적으로 탄소중립이 어렵다고 답했다.
아울러 국내의 정유, 철강, 시멘트 등 탄소 배출 상위 3개 업종에서 배출하는 탄소를 `0`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최소 400조 원이 필요하다는 산업연구원의 조사 결과도 있다.
한편 탄소국경세 자체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탄소국경세가 시행되면 EU 역외 기업들이 EU 국가에 대해서만 친환경적 수출을 하고, 탄소 배출이 많은 품목은 유럽 외의 다른 국가로 수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전 지구적 탄소 배출량 감소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더불어 EU 역내 기업이라도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탄소국경세가 적용되는 품목을 직접 수입하기보다는, 그 중간재를 수입해 자국에서 완제품을 제조하는 방식으로 공급망을 조정할 가능성도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공급망의 판도가 지금과는 크게 바뀔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처럼 점차 강화되는 세계적 기준에 발맞춰 그에 부합하는 산업구조로의 재편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병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다행히 우리나라 정부는 최근 EU 집행위 인사와의 면담을 통해 EU가 시행하려는 탄소국경세가 세계무역기구(WTO) 규범에 합치해야 하고, 우리나라는 배출권거래제를 통해 이미 기업에 탄소 배출 비용을 부과하고 있어 탄소국경세 면제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등 국내 기업의 부담을 줄이려는데 힘쓰고 있다.
그럼에도 지난 8월 5일 탄소중립위원회(탄중위)가 공개한 ‘2050 탄소중립 시나리오’ 초안은 현실과 지나치게 괴리됐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이번에 탄중위가 제시한 계획안에는 액화천연가스(LNG)에 비해 연소 속도가 20% 정도로 낮고, 발열량도 50%에 불과한 암모니아를 석탄발전을 대체할 새로운 발전원으로 추진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다.
또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리기 위해 서울 면적의 5배에 해당하는 면적을 태양광 및 풍력발전으로 사용하겠다는 방안도 담겨 있다.
아울러 탄중위는 2050년에는 재생에너지 발전으로 최대 891.5TWh의 전력이 생산될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2020년 원자력 총발전량인 160.2TWh의 약 5.6배 수준이다. 심지어 정부가 제시한 2050년 국내 원전 가동률 90%로 생산할 수 있는 전력 89.9TWh의 무려 10배에 해당하는 비현실적인 수치이다.
이에 따라 현실과 동떨어진 이번 계획안이 문재인 대통령의 탄소중립 선언에 발맞춰 임기 말을 맞은 대통령 치적 만들기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젠 거스를 수 없는 세계적인 친환경 기조 속에서, 우리나라 정부와 기업들이 본인들의 친환경적 행보에 대한 과시나 홍보에 치중하기보다는,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으로 추진해 나가는 데 힘쓰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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